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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닷의 매각과 재단의 미래
2006년부터 서비스하고, 2007년에 법인으로 설립된 위키닷이 2020년 올해 초, 약 14년의 역사를 가진 회사와 위키서비스를 각각 매물로 내놓았습니다.
알기쉽고 직관적인 문법에서부터 복잡한 모듈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위키닷 서비스는 가장 이상적인 위키 서비스로 자리잡았고, 이윽고 2008년 6월에 SCP 재단이라는 사이트가 위키닷에 들어오게 됩니다.
SCP 재단과 각 언어별 사이트, RPC 기관과 같이 재단에서 갈라져나온 사이트 역시 위키닷을 이용하고, 보카로 가사 위키와 같은 사이트 역시 위키닷을 이용합니다.
이런 가운데서 설립자이자 CEO인 미카엘 프랑크코비악Michał Frąckowiak은 비트코인 포럼에 위키닷을 매물로 내놓았습니다.
2020년 6월 현재로서는 비트코인 포럼 이외에 매물로 나온 곳은 없지만, 위키닷 자체가 팔릴 수도 있다는 사실은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습니다. 근래 1년간 위키닷은 없다시피 줄어든 버그 픽스와 연마다 했던 블랙 프라이데이를 2019년 11월에는 하지 않았던 점으로 보아 잠정적으로나마 인적/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음은 명백했지만, 사실상 이번 일로 인하여 그게 기정사실화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그렇다면 위키닷은 왜 팔려야했을까요?
1. 경제적 어려움
회사가 휘청이는 가장 흔하고 보편적인 원인이기도 합니다. 수익이 뒷바침되지 않는 회사는 근본적으로 운영이 어려워질 수 밖에 없고, 결국 자본이 있는 다른 회사나 개인에게 팔리게 되는 것이죠. 아니면 소리소문 없이 서비스를 종료하거나요.
포럼에서 공개한 위키닷의 안정적인 수입량은 2019년에 25만 달러, 한화로 약 3억원입니다. 개인으로 보자면 많은 돈이지만, 회사로 보자면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죠. 개발자에게 인건비만 몇명 쥐어주더라도 금방 동이 날 겁니다.
그동안 위키닷이 해왔던 것을 보면, 소위 말하는 혜자로움이 넘치는 곳이긴 했습니다. 사이트 구축에 필요한 각종 서비스를 지원하고, 강력한 위키 문법과 사이트 관리 기능등을 보면 무료 사이트 중에서 이만한 곳이 없을 정도로 뛰어났죠. 반면 그것은 곧 회원수에 비해 수익이 얼마 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위키닷 회원은 2020년 6월 기준으로 약 580만명의 회원을 가지고 있고, 각종 부계정과 휴면계정들을 감안하더라도 수백만명의 이 인원들을 가지고 창출해낼 수 있는 금액이 고작 연 3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받은 혜택에 비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적으니 판매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면, 연 25만 달러라는 수익이 하향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있습니다. 이는 공개된 통계가 2019년에 한해서만 공개되어있으며, 전성기 시절에는 월 20만 달러의 수익이 있었다는 말도 있으니만큼 위키닷 전체 수익이 사실 몇년 전부터 하향곡선을 그리면서 판매를 염두에 두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2. 인적 자원의 부족
개발자라고 함은 만성적인 인력부족을 겪는 곳입니다. 직종도 직종이거니와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되기에 누군가 한 명의 부재는 각각 치명적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위키닷은 그동안 10명 이하의 적은 인원으로 관리되어왔지만, 발전하는 시스템을 따라가지 못해 도태되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2014년에는 부트스트랩을 도입했지만, 이후로 큰 시스템 변화 없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었죠.
스팸, 보안, 버그 등등 위키닷에는 수많은 문제점이 산적해있었고, 이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처리하기엔 인원이 부족했었습니다. 그리고 2010년대 말에는 주요 인원들이 퇴사하면서 위키닷이 새로운 무언가를 하기에는 힘든 시기가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위키닷에는 그동안 위키닷 커뮤니티 유저들이 존재하여, 무급으로 스팸 등을 제거하는 봉사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카엘을 비롯한 경영진의 무관심으로 인해 이들 역시 사라지고 여러 문제점들이 점진적으로 터져나오는 상황입니다.
미카엘 CEO는 새로운 공기가 프로젝트를 깨울 것(Some fresh air would definitely wake up the project)이라고 하였으며, 위키닷 개발은 더이상 자신들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3. 새로운 가상화폐 사업의 시작
미카엘 CEO에 따르면, 현재 가상화폐를 이용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상 위키닷이 팔리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위키닷은 안정적인 수익이 있지만 그리 크지 않고, 반면 짊어져야 할 리스크가 큽니다. 그래서인지 미카엘은 지난 몇년간 위키닷 운영에 소홀했고, 아예 새로운 시도를 하고자한다고 밝혔습니다.
위키닷이 팔릴 경우: 희망편
여러가지 문제가 산적해있지만 위키닷이 팔린다는 것은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미카엘 CEO는 강연에서 했던 "커뮤니티와 대화하고, 이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sure you need to talk to your community, you need to care about them.)"는 말과는 다르게 평소에 소통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며, 경험에 의하면 수많은 PM과 결제 관련 문의조차도 답이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자본을 가지고 있고 좀 더 확고한 비전을 가진 사람이 새롭게 위키닷을 변화시켜나가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조금은 비현실적일지도 모르겠지만, 희망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시나리오를 생각해보았습니다.
모금을 통한 SCP 재단 유저들의 위키닷 매수
3억이라는 돈은 엄청나게 큰 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수만명, 혹은 수십만에 달할 수도 있는 사람들이 이를 나눠서 부담한다면 그리 크지 않은 액수로 위키닷을 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재단은 이미 러시아 불법 재단 상표등록 사건으로 인해 모금을 하여 성공했던 경험도 있고, 위키닷을 유지보수시킬 수 있는 뛰어난 인력 역시 갖추고 있으니 어쩌면 미디어위키 등으로 이전하거나 새로운 위키엔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 보다 수월하게 현재의 시스템을 개량해나가면서 재단을 운영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경우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 하나가 탄생하게 될 테고, 수익성이 좋아진다면 그동안 문제되어왔던 재단의 저작권, 상표 등의 문제를 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주체가 탄생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 러시아 불법 재단 상표등록 사건 이후 모인 금액이 16만 달러이므로 25만 달러에 못미치는 점과 실질적인 위키닷의 소유권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위키닷은 미국 델라웨어에 상장된 상장기업이지만, 주식으로 보상받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절차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제2의 러시아 불법 재단 상표등록 사건과 같은 경우가 발생하지 못한다는 법도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위키닷이 팔릴 경우: 절망편
좋은 사람에게 팔릴 수도 있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자면 나쁜 사람에게도 팔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기회는 균등하니까요. 위키닷에 무지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CEO에 앉게 된다면, 어쩌면 철저하게 기업가의 마인드로서 위키닷을 대한다면 더 이상의 큰 기대는 바랄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재단에 광고가 줄줄이 달릴지도 모를 일이죠.
반면에, 그 정도의 패널티만 감수한다면 재단으로서는 딱히 큰 문제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위키닷은 여전히 잘 돌아갈테고, 어느정도 유지보수만 잘 해준다면야 큰 문제 없이 몇 년 간은 다시 안정된 운영을 할 수 있을겁니다.
위키닷이 팔리지 않을 경우
최악의 경우는 바로 이 케이스로, 위키닷을 사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발생합니다.
이 경우 여러가지로 나눌 수 있겠지만, 공통적으로는 위키닷의 업데이트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을 겁니다. 이제와서 미카엘 CEO가 돌아온다고 해서 무언가 바뀔 수도 없을 것이고요.
그렇기에 재단으로서는 새로운 위키 엔진을 찾아 이전하는 작업에 착수할 수 밖에 없습니다. 2011년부터 고질적으로 있어왔던 그 문제 말이죠.
결론
현재로서는 경과를 지켜볼 수 밖에 없을 것 같군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백업을 충실히 할 것을 권장합니다.
위키닷이라는 강력한 위키 사이트가 사라지지 않도록 바라면서, 이만 마치겠습니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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